오늘은 프랑스 유명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패배의 신호에 대해 리뷰해 보려고 한다.
먼저 이 작품을 리뷰하기 전에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작가 소개
프랑수아즈 사강은 무려 19세에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는데, 발표하자마 대히트를 치게 된다. 글쓴이도 이 책을 읽어본 기억이 있다. 너무 오래되어서 조금 기억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결말 부분에서 충격을 받았었던 기억이 있다. 19세에 쓴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소설 완성도도 높고 나름 반전도 있었다는 게 좋았다. 아무튼 19세부터 천재성을 발휘한 이 소녀는 연이어 발표한 다른 작품들 또한 매우 유명해져 사강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런데 천재들이 종종 그렇듯이 엄청난 타락의 행보도 보여주고는 했는데,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기도 하고 코카인이라는 마약을 소지한 것이 밝혀지면서 크나큰 사회적 반항을 일으켰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는지 티브이에도 이 문제에 관련하여 나오게 되는데 여기서 아주 명대사가 나온다. 바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맞는 말 같으면서도 슬픈 문장인 거 같다. 왜 굳이 자신을 파괴하려고 하는 것인지 짧은 소견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튼 이 자기 파괴적인 성격은 계속되었는지 나중에는 탈세등의 혐의가 인정되어서 말년에 가서는 거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패배의 신호 줄거리
여주인공 루실은 샤를이라는 남자와 동거중이다. 샤를은 루실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연상인데 그 대신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해 루실은 별 직업 없이도 항상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사실 보통의 골드디거와 트로피와이프 격의 여자를 원하는 나이 많은 남자의 뻔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샤를은 진심으로 루실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면 혹시나 루실이 부담스러워하면서 떠날까 봐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부담스럽게 표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느 날 루실과 샤를은 사교모임에 가게 되고 거기서 샤를의 친구인 디안의 새 남자친구 앙투안을 만나게 된다. 디안 또한 샤를처럼 부를 이룬 중년 여성으로 한마디로 이 두 커플은 남녀가 바뀐 연상 연하 커플이었다. 그런데 역시 비슷한 나이대는 통하기 마련인지 루실과 앙투안은 서로 농담을 하면서 웃게 되고 이런 모습을 보고 디안은 질투심이 들게 된다. 디안은 앙투안을 진심으로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자기가 나이가 훨씬 많기 때문에 자격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사교모임에서 계속 만나게 되면서 루실과 앙투안은 점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심지어 샤를도 그것을 눈치채게 된다. 그런데 보통의 남자와 다르게 오히려 샤를은 그 둘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주기까지 한다. 결국 이들은 불같은 사랑에 빠지게 되서 서로의 애인 모르게 만나면서 사랑을 나누게 되고, 나중에 앙투안은 루실에게 너무 빠져서 결국 엄청난 질투를 하면서 티를 다 낸다. 루실은 솔직히 샤를을 떠나면서까지 만나야 할까라는 생각이 처음에 있었기에 처음에는 잠시 앙투안과 헤어지기까지 하지만 결국 이별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다시 앙투안과 재회하고 샤를에게 이별을 말하게 된다. 샤를은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결국 앙투안은 당신의 약점으로 당신을 지탄할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앙투안과 루실은 그 정열적인 사랑을 시작하게 되지만 점차 루실은 샤를과의 안락한 생활과 다른 투쟁하는 삶이 점차 벅차게 된다. 샤를은 경제적으로 정말 아낌없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굉장히 안정된 차분한 사람이기에 앙투안과 너무 비교되는 부분도 있긴 했다. 심지어 루실은 원하지 않았던 아이까지 앙투안과 가지게 되는데, 낙태를 할때 샤를이 경제적으로 도와주기까지 한다. 결국 루실은 앙투안과 헤어지고 샤를과 결혼하게 된다. 결말이 정말 인상 깊은 것은 앙투안과 나중에 사교모임에서 또 만나게 되는 것이다. 둘이 사랑을 나눌 때 밀어처럼 말하는 단어가 퇴각의 북소리였는데 샤교모임에서 그 단어가 나오자 둘은 씁쓸함을 느끼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총평
정열적으로 시작되는 사랑이 어떻게 현실의 무게속에서 점차 옅어지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랑 이야기였다. 그렇게 서로에 대해 죽고 못 사는 사람도 결국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무료해지고 단순해지는 구나라는 씁쓸함도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결국 현실적으로 샤를을 선택하게 되는 루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던 루실은 이미 앙투안을 선택했을 때부터 희생을 감수하고서도 그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현실적인 삶의 무게에서 그녀는 백기를 든 것이 아닌가 싶다. 정말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고, 까뜨린느 드뇌브 주연으로 영화도 만들어졌는데 어디에서 그 영화를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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